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라하의 봄 (문단 편집) == 여러 가지 이야기 == * 당시 같은 시기에 [[중국-소련 국경분쟁]]이 벌어졌으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자칫하면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중국 전면 침공은 보류했다. * 체코를 빛낸 [[아이스하키]] 선수인 [[야로미르 야그르]](Jaromír Jágr)는 68번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프라하의 봄을 기리기 위함이다. 야로미르의 조부는 둡체크 서기장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 [[비틀즈]]의 [[Hey Jude]]를 당시 체코 시민들이 공산당 보수파에 대항하는 의미로 [[Hey Jude]]를 국가처럼 부르고 다녔다. 시위대를 상징하는 곡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비틀즈가 공산권에 퍼뜨린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바가 있었고 그 결과로 프라하의 봄이 끝난 뒤 쿤데라의 소설들은 체코에서 거의 대부분이 [[금서]]로 지정되었다. 프랑스로 이주한 후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때를 배경으로 쓰여진 걸작 소설이다. * 세계적인 육상선수 [[에밀 자토펙]]도 프라하의 봄에 가담했다가 [[숙청]]되었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났지만 그 뒤 청소부, 광산 노동자 등을 하면서 철저한 냉대를 받았다가[* 다만 자토펙은 끝까지 소련에 협조를 거부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벨벳 혁명]]으로 복권되었다. 둡체크가 민주화 얼마 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 정확히는 교통사고 이후 후유증이 악화되어 향년 71세로 사망하였다.]과 달리 그는 80대 직전까지 장수했고 20세기 말에 사망했다. * 체코가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달성한 1990년에는 최초로 프라하의 봄 축제가 개막되었는데 전야제 행사로 "프라하의 봄 콘서트"가 열렸다. 이 콘서트의 피날레에서 체코가 낳은 명 [[지휘자]]인 [[라파엘 쿠벨릭]]이 42년간의 망명생활 끝에 76세의 나이로 고국으로 돌아와 체코 관현악단을 이끌고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저 유명한 블타바(몰다우)를 연주할 때 '''지휘자, 연주자, 관객 할 것 없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FfnGDZG8gSI|영상]] *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도입부에 이 사건이 언급된다. 작가가 [[프라하]]의 고서점에서 중세 수사인 아드소의 수기를 구했지만 프라하에 갑자기 소련군이 진주하는 바람에 급히 몸을 피해 [[오스트리아]]로 도망가는 사이 번역을 했지만 중간에 동행자가 원본을 가지고 어디론지 가 버렸고 작자는 원전을 구하려고 했으나 정작 찾아낸 원전은 자신이 번역한 내용과는 전혀 딴판인 책이었고 그래서 원본을 영영 구할 길이 없어졌다는 이야기. 장미의 이름은 소설 내에서 듣는 이야기나 회고의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른바 액자소설이지만 이는 아드소가 노년에 이 수기를 쓰면서 다시 회고하게 되는 구성. 책의 입수 과정은 그냥 서문에만 언급된 설정이다. '''세상에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도 존재한다'''는 말이 복선으로 깔려 있기는 하지만. * [[체코 영화]]계를 비롯해 갓 융성하던 체코 문화의 정점이자 엄청난 후폭풍을 안긴 사건이었다. 소련 당국의 검열에 된서리를 맞은 [[밀로스 포먼]]과 이반 파서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 버렸다. 포먼의 '소방수의 무도회' 당시 벌어졌던 검열 스캔들은 누벨바그 일원들이 항의 성명을 낼 정도로 큰 스캔들로 꼽힌다. 베라 치탈로바 역시 9년이나 커리어가 단절되어 버렸다. [[얀 슈반크마예르]]도 그렇고 이 시절 작가나 감독들 중 검열의 된서리를 맞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얀 슈반크마예르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엔 제작 체계가 국영이라 검열도 검열이지만 기획 단계에서 퇴짜맞은 게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기획서를 쌓아두다가 민주화 이후 꺼내서 만들었다고. 화장터 인부나 귀, 줄 위의 종달새 같은 체코 뉴웨이브 걸작들도 대다수가 개봉 금지당하고 [[소련 붕괴]] 후에나 공개되었다. [[The Plastic People of the Universe]] 활동 역시 프라하의 봄의 흥망성쇠와 같이 한다. * [[게릴라들: 총을 든 사제]]에서 주인공 게릴라 일행이 납치한 미군 장교 맥두걸이 "어차피 혁명해 봤자 [[대숙청|러시아처럼]] 될 거다."라고 조롱하자 게릴라 중 한 명이 "[[망상|우린 절대로 그 관료주의자 놈들처럼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물론 [[니카라과|현실은]]... * 이 사건이 있은 후 안 그래도 [[소련]]과의 관계가 나빴던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알바니아]]는 프라하의 봄을 진압한 데 대한 항의 표시로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탈퇴했다. * 공산독재의 정점을 찍은 [[김일성]]의 [[북한]]은 역시나 프라하의 봄을 '체코 정부의 강압성이 부족하고 사회주의 사상교육을 제대로 못해서 벌어진 사건' 이라고 비난했다. [[https://m.blog.naver.com/minjune98/222549715442|#]] * 프라하의 봄 이후 1979년 겨울 ~ 1980년 5월까지 [[대한민국]]에서 유사한 사례인 [[서울의 봄]]이 있었다. * 2015년 5월 말 러시아 TV에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대가 온 건 쿠데타 진압을 위해서였으며 고의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프라하의 봄을 왜곡보도하자 체코 정부에서 불쾌감을 표시한 일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